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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안투가 진원의 고국?

사이트 운영자 2020. 8. 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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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     몇몇 니샤오 같은 평론가들은 <<슈안투(현도)가 친본의 고국이었다>>라고한다. 같은 지역에, 그러니까 친본이 있었던 지역에 차 부족도 존재했었다.

차부족과 친본의 수도는 문헌적으로 기록된건 없지만 촤나니지역에서 7640리 떨어져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차부족은 바닷가 근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슈>>에 기록된건 실수라고 볼 수 있다. 이에대해 일본 역사학자 나카는 <<차부족은 압록강위에 위치했었고 차나니까지의 거리인 7640리는 과장된것으로 보인다. 아마 여기서의 7000리는 약 5000리를 뜻할것이다.>>라고 했다.

게다가 <<칸시 쯰쟌>>촤얀이 라오둔지역에 위치했다고 한다. 아마  촤샨 산과 관련이 있을것이다. 아마 촤부족도 여기 위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지역은 난난군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인용구가 친본이 압록강 상류에 위치했다는 것의 증거가 된다. 부족들 가운데 친본의 윗지방에서 테반이라는 군이 만들어졌다. 촤부족까지 일곱개의 부족이었고, 테반 부족이 생기면서 총 여덟개의 부족이 백제로 편입된다. 안타깝게도 <<한슈>>엔 위에 언급된 명칭이 촤부족을 제외하곤 없다.

 

구체적으로 친본의 올바른 국경은 <<만주 지역 지리지>>에 나온다 : <<친본의 동쪽 경계는 개마고원 아니면 산에서 시작되고 오래된 지방을 분수령으로 삼는다(차간과 얀간지방)평안과 함경같은 오래된 지방. 친본의 영토는 옥저와 초기 현도군의 영토와 관계가 있다. 남쪽에 찬성의 경계 천현 (함흥근처)는 난난군의 경계와 맞닿는다. 북쪽 분수령으론 압록강과 훈쟌, 수즤헤, 훈헤와 순가리강에 맞닿고 부여와 경계를 같이 한다. 남쪽으론 대략적으로 구안코우(푸슈니에서 서쪽으로)-쥴랸천 가 랴오군둔과 경계를 같이한다.

 

 

18.

이런 이론으로 친본의 위치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최초엔 조선의 북쪽에 위치했다고 했고, 싀삔, 푸슌, 툰후아 산맥 사이에 위치했다고 했다. 이어서 친본이 공식적으로 해체되고 (현도군에 의해서)친본의 영토는 현도군의 것이 되었다. 이 때부터 현도군이 이 지방을 관리했다. 이전부터 현도군의 백성과 친본의 백성이 서로 섞여있던 것일 수도 있다. 아마 서도 같은 지역을 다르게 불렀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고구려의 침입을 받고 현도군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영토는 가이유안과 타이안 산맥 사이에있었고 타즤헤와 툰쟌쟌 강 사이에 분수령을 두었었다. 이 지역은 일찍이부터 역사서에 나와있다. 이 지역은 <<쉬찌>>에 서술되어 있다. : <<챠오샨의 영향력은(기원전 7세기경) 휴안투와 렐란의 영토에까지 미쳤다 >>.

 

앞서 언급되었듯이 친본군은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동안 유지되었다. 기원전 108년에 세워져서 기원전 82년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 이후 한나라의 통치를 받았다. 케이. 시라토리는 이에대해 <<친본은 침략당한 후 완전히 정부가 해체되었고 국민들은 힘든 관리를 받았다. >>라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한나라는 이 지역을 성공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2 임둔

처음엔 임둔군의 위치가 꽤나 뚜렷해보였다. –한국 북쪽 지역의 칸본지방 그래서 친본지역과 국경을 마주할거라는 이론과 상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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